“탈레반이 시켜 아프다고 했다” 석방인질들 기자회견
석방 인질 대표 “물의 일으켜 국민들께 죄송”
카불서 기자회견.."납치 직후 탈레반이 전원 살해위협"
"금식기도를 단식으로 여긴듯..탈레반이 시켜 아프다고 했다"
탈레반에 납치됐다가 석방된 유경식(55) 씨는31일 "큰 물의를 일으켰다는 생각에 잠을 못이뤘다"며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지난 29일 풀려난 유 씨는 이날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의 세레나 호텔에서 한국인 인질 대표자격으로 서명화(29) 씨와 함께 한 기자회견에서 "국민에게 심려를끼쳤고, 정부가 많이 타격을 입었다"며 이 같이 밝혔다.
서 씨는 "가족뿐 아니라 온 국민이 염려해주셔서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유 씨는 지난 7월19일 발생한 납치상황에 대해 "낮에는 안전하다고 해서 카불에서 아침에 출발했다"며 "전세버스 운전사가 아는 사람이라면서 현지인 2명을 태워 앞에 앉혔는데 20~30분 후 이들이 총을 발포하면서 차를 세웠다"고 말했다.
이후 무장한 탈레반 2명이 버스에 올라타 한국인을 하차시킨 뒤 승합차로 나눠 옮겼고, 이 과정에서 고(故) 배형규 목사는 실신했다고 유 씨는 설명했다.
유 씨는 "납치 직후 탈레반은 자신들이 사복 경찰이고, 알-카에다로부터 보호해주겠다고 말했다"며 "그러나 인질을 전체 집합시켜서 일렬로 세운 뒤 기관총과 소총으로 위협하면서 자신들이 알-카에다라고 말한 뒤 돌변했다"고 말했다.
유 씨는 이어 "(그 탈레반이) 또 총을 쏘는 흉내를 하면서 `너희들 잘못하면 이렇게 한다'고 위협했다"며 "(인질들이) 패닉상태였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인질생활과 관련, "기운이 없어서 하루종일 잠자고, 다시 잤다"며 "사태 초반에 빨리 구출해 달라고 금식기도를 했는데, 사흘을 안먹으니 탈레반이 보기에 단식으로 보여진 것 같다"고 소개했다.
유 씨는 또 처음에 감금됐던 장소에 대해 "반지하에 짐승우리 같았고, 창도 없고, 환기통이 하나 있었다"며 "가축을 키우는 농가에로 옮겨진 뒤에는 주민들이 감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질들은 6일쯤 지난 뒤 3~4명씩 분산됐고, 나는 12번 이동했다"며 "주로야간에 달이 없을 때 헤드라이트를 끈 오토바이에 실려 이동했고, 도보로 이동한 적도 몇 번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인질들이 억류생활 도중 언론과의 통화에서 인질 일부가 위독하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 "(탈레반이) `아프다고 해야지 구출해준다'면서 멘트를 시켰다"며 "(난) 갑상선 수술 때문에 호르몬제를 부탁했는데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지영 씨의 석방양보설에 대해선 "여자만 세 명인데 두 사람을 석방한다고 하니 남은 한 사람이 힘들지 않겠느냐"고 반문한 뒤 "(세명이) 기가 막혀서 울었는데 (이 씨가) `나 대신 너 가라'고 이야기해서 김경자 씨가 가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다른 인질들에 대한 소식을 알았는지 여부에 대해 "어젯밤까지 소식을 몰랐지만 탈레반이 들려준 라디오 영어뉴스를 통해 여자 2명이 석방됐고, 2명은 살해됐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가슴이 철렁했지만 (다른 인질들이) 충격받을까 봐 내색을 못하고 속으로만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누군지는 몰랐지만 젊은 사람들 가운데 반항하거나 탈주 오해를 받고 사살된 것이 아닌지 걱정했고, 배 목사는 살해된 것으로 추측했다"며 "(살해는)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한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한편 유 씨는 아프간 선교를 떠난 이유와 관련, "신앙을 하는 입장에서 목사가 되기 전에 단기선교를 어떻게 하는가..(궁금해 하던 참에) 아는 선교사 중에 `마침 아프간팀이 가니까 같이 가라'라고 해서 갔다"며 "배울 겸, 봉사도 의미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 씨는 또 향후 계획과 관련,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교를 다니는데 이번주 개강했으니 학교를 가야 한다"며 "다들 죽었다가 살아났는데 감격스러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카불=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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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무장세력에 납치된 여성인질이 이들의 감시를 피해 42일간의 피랍 생활을 바지 안쪽에 기록한 일지가 31일 공개됐다.
29일 석방된 서명화(29)씨가 자신이 입었던 흰색 바지 안쪽면에 볼펜으로 깨알같이 기록한 이 ‘피랍일지’에는 이동경로와 주요 사건, 자신의 상념 등이 담겼다.
이날 카불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서씨는 “처음엔 일행이 필기구를 갖고 있어 일기를 썼는데 탈레반이 수시로 수색해 압수해갔다”며 “다행히 하얀 바지를 입고 있어 감시를 피해 바짓단을 걷어 7월24일부터 썼고 그 이전은 기억을 되살려 간단히 기록했다”고 말했다.
이 일지엔 ‘8월15일 아마드 집으로 이동, 17일 몸살 배탈, 18일 주스로 만든 죽 먹음, 21일 머리 감음’ 등의 내용이 담겼고 먹고 싶은 음식이나 개인적인 기도 제목 등도 적혀있다.
서씨는 “우리가 어떻게 지내고 있었는지 나가면 가족들이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 이동 장소, 주요 사건, 생각 같은 것을 적었다”고 말했다.
▲ 몰래 쓴 피랍일지 공개하는 서명화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