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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영화 ‘디워’ 탄생한 옛 오곡初
자유행동
2007. 8. 28. 12:27
이무기, 폐교에서 용으로 승천하다
화제의 영화 ‘디워’ 탄생한 옛 오곡初
문닫은 학교에 4년 전 ‘영구아트무비’ 이사와
교실엔 첨단장비·운동장은 특수촬영소 ‘변신’
보안 위해 견학은 제한… 區 “향후 관광지로”
- 서울 학교 같지 않은 곳이었다. 전교생 다 합쳐 여느 학교 한 학급 남짓한 60여명의 아이들은 선생님과 운동장에서 공을 찼고, 개울가에서 고기를 잡았다. 학부모들은 스승의 날이면 선물꾸러미 대신 도토리묵을 쑤어왔다.
입학·졸업식때면 ‘서울의 초미니 학교’라며 방송 카메라들이 단골로 찾던 곳. 1972년 개교 이후 졸업생 1092명을 낸 서울 오곡초등학교(강서구 오곡동)가 1999년 2월 문을 닫던 날,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부둥켜 안고 울었다.
- ▲ 영화‘디 워’를 만든 영구아트센터 입구. 폐교된 오곡초등학교를 영화제작소로 탈바꿈시켰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 이후 유령처럼 버려진 이 학교 터에 2003년 성탄절 무렵 60여명의 젊은이들이 몰려왔다. 빛바랜 건물과 깨진 유리창을 말끔하게 손보고, 담벼락 귀퉁이에는 두 눈을 부릅뜬 괴수 용가리 모형을 세웠다. 학교 팻말 자리에는 ‘영구아트무비’라는 간판을 붙였다. “세상을 놀래킬 괴물영화를 만들겠다”고 큰소리쳤고, 올해 그들이 만든 괴물영화 ‘디 워’는 관객 800만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미국 현지 촬영분을 뺀 특수효과 등 주요 장면들은 모두 이곳에서 찍었으니 ‘이무기’가 폐교(廢校)에서 ‘용’으로 승천한 셈이다.
영구아트무비의 잡풀 우거진 쇠울타리에는 학교 냄새가 여전했다. 김민구 조감독(28)은 “크리스마스 이틀 전 문래동 공단에서 이사왔어요. 여기가 정말 서울 맞나 싶어 다들 기막혀했다”고 말했다. 담벼락 너머로는 김포공항 활주로가 멀지 않아 굉음을 내는 항공기가 수시로 뜨고 내렸다.
- ▲ 영구아트센터의 캐릭터 디자인실.
- 400여 가구가 농사짓던 마을은 김포공항 활주로 부지에 편입되면서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사람들이 모두 떠났고, 학교도 문을 닫았다. 서울쪽에서 학교로 연결되던 진입로도 없어져 인천이나 부천을 거쳐야 이곳에 올 수 있다. 학교 땅은 영화사가 사들였다. 빈 교실에는 컴퓨터와 각종 장비가 들어섰고, 운동장은 ‘특수 촬영소’가 됐다.
이무기가 불을 내뿜는 장면은 한겨울 운동장 터에 학교 건물보다 더 높은 푸른 막을 쳐놓고 촬영했다. 고층 건물과 각종 무기 모형은 수작업으로 꼼꼼히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미니어처 헬기 4대중 3대는 촬영때 박살났다. 컴퓨터 그래픽 담당 윤충렬 팀장(32)은 “영화 작업을 시작할때 낳은 아이의 영어 이름을 이든(영화 ‘디 워’의 남자 주인공 이름이기도 하다)으로 지었다”며 “그 아이가 TV에서 영화 장면이 나올때마다 ‘아빠 아빠 디오 디오’라고 소리친다”고 말했다.
- ▲ 영구아트센터 내부의 벽이 각종 영화 포스터로 장식되어 있다
- 교실을 깔끔하게 리모델링한 디자인실에서 콧물 질질 흘리는 1950년대 어린이들을 스케치하던 김현진(26)씨. “어머, 안돼요. 이거 다음 작품 캐릭터인데”하고 화들짝 놀라며 그림들을 숨겼다. “여기요? 스트레스 풀 방법이 많아서 좋아요. 남자들은 농구하고 여자들은 논둑길 걸으며 수다떨어요. 밤하늘 별은 또 얼마나 많은데요.”
구경 오고 싶다는 문의가 끊이지 않지만 아직은 일반 견학을 제한하고 있다. 차기 작품 등 극비 사항이 너무 많아서란다. 김민구 조감독은 “작년 여름 졸업생이라는 청년 3명이 밤늦게 왔다 깜짝 놀라더니 ‘학교를 안 부수고 멋지게 가꿨다’며 좋아하더라”고 말했다. 매년 대여섯 차례 학교터를 찾는다는 오곡초등학교 마지막 교장 김근흠(62·올 봄 정년퇴임)씨는 “애들 정서를 위해 해맑고 예쁜 작품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관할 강서구도 이곳을 볼거리로 가꾸겠다며 나섰다. 경치 좋고 유서 깊은 40곳을 골라 9월에 발표하기로 한 ‘강서 40경’에 영구아트무비를 포함시켰고, 장기적으로 영화사와 협의해 시네마 테마파크로 가꾼다는 계획도 세웠다.
- 지난 1일 개봉된 '디워'가 현재 800만 관객돌파를 눈앞에 두고있다. 이는 한국 SF영화 역사상 유래없는 쾌거이다. 순수 국내기술로 제작된 '디워'의 숨은 공신, '디워'스텝을 만나기 위해 지난 24일 서울시 오곡동에 위치한 영구아트 SF영화연구소를 찾았다. 약 3000평 규모의 SF영화연구소는 1999년 폐교된 서울 오곡 초등학교의 부지이다. 이 곳에서 김민구 조감독을 만나 '디워' 속에 숨은 이야기를 들었다. '디워'는 주로 미니어처(miniature)와 컴퓨터 그래픽을 합성한 영상으로 이루어졌다. 미니어처는 5분의 1크기로 제작되었는데 모두 수작업으로 스텝 3명이 3개월에 걸쳐 만들었다. 6년 남짓한 긴 작업 끝에 영광스럼 결실을 맺은 '디워', 김민구 조감독은 "디워는 정말 자식같은 작품입니다. 저희 직원들 모두 꿈을 먹으며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봉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