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황우석·심형래 ''게임 주인공''과 동일시
합리적 사유 없는 한국의 인터넷 문화 황우석·심형래 '게임 주인공'과 동일시 [진중권의 상상] <14>이른바 '대중지성'에 관하여 계몽 없이 계몽시대 끝나… 인터넷엔 정보 대신 감정만 흘러 영웅담에 목마른 反지성주의, 때론 파시즘으로 발전하기도 | ||||||||||
몇년 전에 어디엔가 “계몽은 끝나지 않았으나, 이미 계몽의 시대는 지났다”고 쓴 기억이 난다. 그때 내가 맹아의 형태로 보았던 그것이 지금은 일반적 현상이 되었다. 요즘 대중들은 여기저기서 “가르치려 들지 말라”고 반발한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런 움직임을 ‘대중지성’이라는 말로 축성하기에 바쁘다. 대중들 사이의 네트워크가 진정으로 ‘지성’이 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지 고려 없이, 그저 대중들이 케이블로 연결만 시켜놓으면 거기서 저절로 지성이 나온다는 식이다.
언론에서 떠드는 대중지성이란 게 얼마나 허망한지 황우석 사태를 통해서 이미 경험한 바 있다. 고작 영화 한 편에 사회 전체가 들썩이는 것도 그 잘난 대중지성이 연출한 해프닝이다. 돌멩이를 산더미처럼 쌓아봐야 어차피 돌무더기, 거기서 저절로 지성이 나오는 건 아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텍스트의 토대 없이 바로 이미지와 사운드로 나아가고 있다. 이게 한국 디지털 문화의 한계다. 이는 물론 우리에게 부족한 텍스트 문화의 합리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극복해야 한다.
민족주의 만세! 순혈주의 만세!!! 이번 토론에서 국제화 운운하는 민족의 반역자들은 동남아 열등인종들과 함께 대량 멸절시켜야 한다. 배달민족 만세다.” 갑자기 대중지성이 상찬받는 데는 무슨 대단한 이론적 배경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정보도 상품인 이상, 소비자의 기호에 맞아야 하고, 지식도 상품으로 팔리려면 소비자의 입맛에 맞춰야 한다. 대중은 물론 자기가 똑똑하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 한다. 대중지성을 얘기하는 이들은 종종 네트워크로 연결된 두뇌는 그 어떤 전문가의 두뇌도 뛰어넘는 능력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입증하느냐 하는 것이다. 증명이 되지 않는 한, 그 어떤 개별 지성도 뛰어넘는다는 대중지성의 얘기는 한갓 신비주의에 불과하게 된다. 이 새로운 지성의 출현 조건으로 종종 거론되는 것이 바로 '네트워크'의 속성이다. 가량 마셜 맥루한의 뒤를 이어 캐나다 토론토 학파를 이끄는 데릭 데 케르코베는 컴퓨터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순간 개별 컴퓨터를 뛰어넘는 수행능력을 획득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예를 들어 '그리드' 시스템을 생각해 보자. 개별 PC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거대한 슈퍼컴퓨터로 활용하는 방법으로, 재정이 부족한 연구소에서는 종종 이 방법을 이용해 연구에 필요한 복잡한 연산을 수행해 낸다. 보잘 것 없는 PC도 서로 연결되면 슈퍼컴퓨터의 성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개별 PC들의 접속은 그저 하나의 슈퍼컴퓨터의 성능을 이룰 뿐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과연 네트워크로 연결된 컴퓨터들이 그 어떤 컴퓨터라도 뛰어넘는 특질을 가질 수 있는가? 따지고 들면 아주 복잡한 얘기지만,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문외한인 나로서는 그 결론이 '유니버설 튜링 머신'(UTM)과 관계가 있을 거라 짐작할 뿐이다. 이 관념에 따르면, 유니버설 튜링 머신은 자기 자신을 포함해 그 어떤 개별 튜링 머신이 하는 일도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식으로 디자인된 계산기라도 결국은 하나의 튜링 머신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
기사 중에서 `서구의 경우~17세기 합리주의, 18세기 경험주의, 19세기 계몽주의를 거쳐 텍스트 문화에 걸맞는 의식구조를 확립했다.`고 나오는데 통설과는 다르다. 상식선에서 말하자면 17~18C는 경험주의와 합리주의, 계몽주의가 같이 공존하던 시대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경험론자들은 베이컨(1561~1626), 로크(1632~1704), 흄(1711~1776) 등이고, 합리론 학자는 데카르트(1596~1650), 스피노자(1632~1677), 라이프니치(1646~1716) 등이다. 르네상스와 자연과학의 발달(뉴턴의 기계론적 우주관 등), 합리주의와 경험론의 로크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계몽사상가들로는 몽테스키외(1689~1755), 볼테르(1694~1778), 루소(1712~1778)와 함께 백과전서파인 디드로(1713~1784)와 달랑베르(1717~1783) 등이 있다.
그리고 계몽주의라 함은 유럽(서구)의 17~18C 계몽사상을 포괄하면서 19C 이후 다른 지역으로 확산된 계몽적 운동을 말하기도 한다. 대체로 서구의 사상 조류가 대략 경험-합리-계몽의 차례를 밟기는 했으나, 기사처럼 세기에 따라 17C 경험-18C합리-19C 계몽으로 간 것은 아니다. 결정적으로 서구(비서구가 아닌)의 계몽사상 및 계몽주의의 절정기는 19C가 아닌, 18C 였다. 오히려 서구에서의 19C 사상의 조류는 전반기가 계몽주의에 반발한 낭만주의였고, 19C 후반은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였다. 그리고 학계에서는 18C의 계몽주의가 18C 미국의 독립 혁명(1770년대)과 프랑스 대혁명(1789~)의 가장 큰 배경 중 하나로 보고 있다. 기사에서 무슨 근거로 위의 순으로 서구 사상의 흐름을 들었는지..? 위에 적은 것이 일반적인 학계의 입장이다.
진틀러씨! 이제 고만 합시다. 당신 말대로 분노한 대중의 지성(?) 이 외친다.
단군왕검이시여, 그리고 조상님들이시여,진틀러를 굽어 살펴주소서.
하잇!!! 진틀러 만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