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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실험정치’명과 암

자유행동 2007. 8. 26. 16:24


    ↑지난 8월 20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경선 승복 연설을 하는 박근혜 전 대표.

    “누가 뭐래도 그는 국민적 지도자가 됐다.”(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
    “대한민국에서 그의 근처에 갈 만한 정치인은 없다.”(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그는 현존하는 정치인 중 가장 강력한 지지기반을 가진 인물임이 확인됐다.”(홍사덕 전 국회부의장)

    한나라당 중진들이 말하는 ‘그’는 바로 박근혜 전 대표다. 경선 패배 후 박 전 대표는 오히려 3김(金) 못지않은 반열의 정치인이 됐다. 김영삼·김대중·김종필은 한국 현대사에서 자신의 지분을 갖고 정치를 한 트로이카였다. 3김시대 이후엔 3김과 같은 정치인이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란 게 정치권의 통설이었다. 그 통설은 박 전 대표 앞에서 무너졌다. 작년까지만 해도 인기 있는 대중정치인이었던 박근혜는 이번 경선을 통해 정치권의 대주주로 거듭났다. 박근혜가 지금까지 말해온 ‘원칙’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입증한 결과다.

    그러나 ‘박근혜 정치’는 수수께끼다. 3김이 3김으로 불린 이유는 확고한 지역기반, 그리고 조직과 자금이란 정치의 양대 요소를 독점했기 때문이다. 공천권으로 의원을 줄 세우고 정치자금의 중앙집중식 모금과 분배를 통해 의원을 관리했다. 그러나 박근혜는 3김과 같은 수준의 지역 맹주는 아니다. 대구·경북(TK)이 이번 경선 막판에 표를 몰아준 정도다. 조직과 자금이란 측면에서 보면 3김과는 더욱 딴판이다. 그래서 박근혜 정치는 실험정치다.

    작년 8월 박근혜가 대표직에서 물러난 지 한 달쯤 지난 때였다. 김무성 의원이 박 전 대표에게 “지금부터 움직여야 합니다”라고 했다. 의원과 당협위원장을 본격적으로 포섭하자는 얘기였다. 그러나 박근혜는 “대표 때도 계파정치를 안 했는데 이제 와서 줄 세우기는 하기 싫다”는 취지로 얘기했다. 김 의원이 “박 전 대표가 현실정치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불만을 표시해도 박근혜는 요지부동이었다.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 의문사한 고(故) 장준하 선생의 부인을 만나러 갔을 때였다. 박근혜는 이날 만남을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했지만, 일부 참모들이 “이런 행사를 홍보하지 않으면 어떤 행사를 홍보하란 말이냐”며 박 후보 모르게 기자단에 알렸다고 한다. 박 후보는 만남이 끝난 뒤 “유족분들이 내가 기자들을 데리고 와서 무슨 쇼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겠느냐. 왜 알렸느냐”고 나무랐다. 작년 말 대학입시생이 수능시험을 볼 때 측근들은 사찰에 가서 절하고 기도하는 학부모를 위로하자고 건의했으나, 박근혜는 “자녀들의 합격을 절실하게 바라는 부모에게 가서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는 취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근혜가 캠프에 전략기획팀을 따로 두지 못하도록 한 것도 이벤트식 정치와 쇼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암)
    시대정신 주도 못해 외연 확대 실패
    타협없고 원칙에 집착… 융통성 없고 답답한 이미지
    2인자 폐해에 과민반응… ‘내사람 만들기’에 소극적


    정치를 타협과 절충의 산물이라고 한다. 아무리 멋있는 명분으로 포장하더라도 속을 들여다보면 다자(多者) 간 이해관계의 최대공약수를 산출해 내는 것이 정치의 주요 기능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치’는 원칙을 고수하고 원칙에 집착한다. 지난 5월 경선 룰 다툼 때도 박근혜는 여론조사 반영률을 선거인단의 실제 투표율이 67%보다 낮을 경우 67%인 것으로 의제(擬制)하자는 강재섭 대표의 중재안을 끝까지 거부해 관철시켰다. 누가 더 유리하고 불리한지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투표는 동등한 가치를 지녀야 한다’는 표의 등가성(等價性)을 훼손한다는 것이 박근혜의 일관된 논리였다. 지난 8월 17일 마지막 합동연설회가 열린 서울에서 박 후보 지지자들이 파란 손수건을 일제히 흔들며 세(勢)를 과시한 것에 대해서도 박근혜는 “왜 우리가 정해진 규칙을 위반했느냐. 도대체 누가 시킨 짓이냐”고 캠프 관계자를 다그쳤다고 한다. 손수건 등 물품을 반입하는 것은 선거법 위반 사항이었다.

    지난 1월 말 김 의원이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 등 3선(選) 이상 의원을 초청해 식사대접을 했을 때였다. 주로 ‘친박(親朴·친박근혜)’ 의원이 모였다. 김영선 의원이 일어나 “박근혜 대표를 위해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께서 우리를 이끌어주세요”라고 했다. 박 전 부의장은 얼굴이 굳어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표가 갑자기 손으로 박 전 부의장의 허리를 감으며 “아니 어떻게 이러실 수 있어요. 그동안 모든 일을 상의하며 함께 해왔는데…”라고 했다. 박 전 부의장은 그래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박 전 부의장은 나중에 이명박 후보 캠프의 선대위원장을 맡았다. 작년 말 박근혜가 국정감사에 신경쓰고 있을 때 과반수 이상의 의원과 당협위원장은 이미 이명박 후보 진영으로 넘어가 있었던 것이다.

    박근혜가 경선에서 패배한 큰 원인 중 하나가 상당수 대의원이 이 후보 측 의원과 당협위원장에게 장악된 것이다. 박근혜 캠프 인사들은 “작년 7월 대표에서 물러나고 몇 달 동안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이 제일 후회스럽다. 당협위원장만 더 잡았어도 이렇게 어려운 게임은 안 했을 텐데…”라고 말한다. 한 측근은 “박 전 대표는 계보정치, 패거리 정치를 생래적으로 싫어한다”면서 “가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 가려서 받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실리를 저울로 꼬박꼬박 재고 한 눈금이라도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는 사람이 모인 곳이 정치권이다. 그러나 박근혜는 자리를 미리 약속하거나 보장해주는 법이 거의 없다. 측근들이 “대선이 어떤 게임이냐 하면 총리만 십수명, 장관 한 자리에 수십 명씩 미리 터를 잡는 게임이다. 이러다 사람 다 뺏기겠다”고 독촉하자 중요한 사람을 만나면 마지못해 “같이 힘을 합쳐 나라를 한번 반듯하게 만들어 보자”고 에둘러 말하는 정도다. 캠프에 합류한 의원도 “도와달라”는 박근혜의 말 한마디에 모험을 건 사람이 대부분이다. 종합상황실장을 맡은 최경환 의원은 “작년 12월 말 박 후보가 이 후보에게 더블스코어로 뒤지고 있었지만,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거절할 수 없었다”고 했다.

    캠프 대변인과 수행단장을 맡았던 한선교 의원은 올 초 해외출장 중 박근혜로부터 “저 좀 많이 도와주실 거죠”라는 국제전화를 받았다. 김재원 대변인도 자신의 지역구(군위·의성·청송)에서 주민과 막걸리를 마시다 “상근하면서 도와주실 수 있죠”라는 박근혜의 전화에 이끌렸다. 캠프 상임고문을 지낸 서청원· 최병렬 전 대표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어렵게 된 한나라당을 박 후보가 지지율 50%가 넘는 정당으로 바꿔 놓았다”면서 “그 빚을 갚기 위해 도우러 왔을 뿐”이라고 했다.

    박근혜는 이번 경선에서 캠프가 쓰는 선거자금에 한푼도 보태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활동비만 자급자족했을 뿐이다. 출판기념회도 은행잔고 5000만원 중 3000만원을 꺼내 간소하게 치렀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장소도 의원회관으로 잡았다. 의원회관 대회의실을 빌리는 데 50만원, 대형 화면 설치비 1200만원, 초청장 제작비 800만원 정도를 사용했다. 최경환 종합상황실장은 “다른 사람은 이런 사정도 모르고 내게 ‘왜 이런 곳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느냐. 이명박 후보는 일산의 킨텍스에서 가졌는데…. 출판기념회가 후보를 알리는 중요한 행사인지 모르느냐’라고 항의했다”면서 “박 후보가 돈이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냐. 나도 속이 타서 힘들었다”고 했다. 캠프의 중진들은 “이런 희한한 선거는 처음 본다. 어떻게 후보가 한푼도 안 내놓느냐” “이러고도 이기면 기적”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명)
    내공의 정치… 깨끗한 경선승복, 정치권 대주주로 급부상
    돈 안 드는 정치… “없으면 없는 대로” 출판기념회도 의원회관에서
    쇼 없는 정치… 언론보도 의식한 과시용 행동 피해
    원칙의 정치…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생각대로 밀고 나가


    ‘박근혜 정치’의 또 다른 특징은 쇼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진실성이 없어 보이거나 과시용으로 보일 수 있는 행동은 피한다. 경선기간 동안 캠프 실무진이 이명박 후보에 뒤지는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예비군 폐지 등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박근혜가 실제로 시행 가능한지, 재원은 마련할 수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본 뒤 상당수 정책 아이디어를 채택하지 않자 캠프 실무자들은 “후보가 현실정치와 너무 괴리돼 있는 것 아니냐”고 투덜댔다.

    지난 7월 말 ‘아프간 정부가 군사작전으로 한국인 인질을 구해낼 것’이란 보도가 나왔을 때 캠프에선 피랍가족이 있는 샘물교회를 방문할 것을 건의했다. 국민의 관심이 쏠려있는 만큼, 그곳에서 인질 가족을 위로하고 함께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박 후보는 거절했다. 그는 “아무리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지만 지금 아들, 딸의 생사가 갈림길에 있는 분을 이용할 수 있느냐”고 했다. 대신 박근혜는 그 당시 상대적으로 국민의 관심이 덜 쏠린 고(故) 심성민씨의 빈소를 찾아 심씨의 아버지를 위로했다. 박근혜는 자신의 방문 사실을 언론에도 알리지 않았을 뿐더러 빈소에 TV카메라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찾아갔다고 한다.

  • 지난 8월 20일 전당대회에서 눈물짓고 있는 박근혜전 대표 지지자.
  • 박근혜는 두 동생만 빼고 모든 이에게 존댓말을 한다. 10년 넘게 함께 일한 비서들과 운전기사에게도 반말을 쓰지 않는다. ‘처음 만나도 형님, 아우 해야 정치를 잘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박근혜의 경어체가 거리감을 준다고 말한다. 그래도 박근혜는 자신의 말투를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

    결국 박근혜의 정치스타일은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전혀 딴판이다. 만일 DJ와 YS의 동교동과 상도동계에 박근혜가 입문했다면 낙방생이 됐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줄을 세우지 않고 돈을 쓰지 않으며 쇼를 싫어하고 타협을 꺼리는데도 경선기간 동안 박근혜 캠프는 상당한 응집력을 보여주었다.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줄곧 큰 차로 뒤졌는데도 이탈자가 거의 없었다. 허용범 공보특보는 “이명박 캠프는 이 후보가 당선될 것 같아서 모인 사람들이고, 박근혜 캠프는 박 후보가 돼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모인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 후보도 당선 직후 사석에서 “ 저쪽은 지고 있어도 열심히 하는데 아마 내가 지고 있었으면 (캠프) 여러분은 다 도망 갔을 거야”라고 했다. 선거인단 선거에서 자신이 진 것에 대해 캠프 인사들을 농담조로 질책한 것이다.

    김재원 대변인은 캠프가 해단하는 날 “저는 영원한 박근혜 의원의 서포터스로 남겠다”는 마지막 논평을 냈다. 구상찬 공보특보도 “내가 비록 ‘패장(敗將)의 참모’가 됐지만, 어디 가든지 내 이력에 반드시 ‘박근혜 후보의 공보특보’였다는 사실을 기재할 것”이라며 “이런 훌륭한 후보를 위해 일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박근혜가 경선에서 승복한 다음날 안병훈·홍사덕 공동선대위원장을 비롯, 김무성·허태열·엄호성·최경환·곽성문·유승민·유정복 의원 등 40여명은 박근혜의 서울 삼성동 자택에 몰려가 통한의 눈물을 뿌렸다. 오죽했으면 박근혜가 “제가 많은 남자분들 눈물을 흘리게 했네요”라고 했을까.

    정치인은 왜 ‘박근혜 정치’에 투덜대면서도 박근혜에 쏠릴까. 한 측근은 “박 전 대표는 남자 정치인이 모성애를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고 지켜줘야 한다는 부성애를 발동시킨다”며 “야릇한 카리스마가 있다”고 했다.

    상당수 정치인은 박근혜의 내공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한 측근이 올 상반기 이 후보와 여론지지도 격차가 큰 것을 우려하자 “그래 가지고 큰일하시겠어요”라고 면박을 줬다. 1년 가까이 이 후보에게 더블스코어 가량 뒤지면서도 박근혜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고 유정복 비서실장은 말했다.

    6년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한 박근혜는 “아버지로부터 지도자 수업을 조금 받았죠”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박근혜는 아버지처럼 2인자를 두지 않는다. 이재오 최고위원이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2인자 역할을 한 것과는 다르다. 박근혜는 “저한테 최측근이 어디 있어요” “나한테 2인자는 없어요”라는 말들을 했다고 한다. 한 측근은 “박 전 대표는 2인자를 둠으로써 생기는 폐해를 너무 잘 안다”면서 “누군가 힘이 세지면 자연스레 힘을 빼도록 유도한다. 사람들이 권한을 골고루 분점하는 체제를 갖춘다”고 했다.

    비선보다는 공조직을, 스태프보다는 라인을 중시하는 것도 아버지와 비슷하다. 박근혜 대표시절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김무성 사무총장·유승민 비서실장·전여옥 대변인이 대표 주변에서 인(人)의 장막을 치는 것 아니냐는 불평이 나왔다. 그러나 최연희 사무총장·유정복 비서실장·유기준 대변인으로 바뀐 뒤 박근혜는 과거의 3인방은 멀리하고 새 당직자와 함께 거의 모든 일을 챙겼다.

    ‘박근혜 정치’는 그러나 이번 경선에서 큰 한계도 드러냈다. 무엇보다 외연확대가 역부족이었다. 이명박 후보가 각종 의혹으로 흔들렸는데도 박근혜의 일반국민 여론조사 지지율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 영남과 충청권, 저소득층, 저학력층, 블루칼라를 중심으로 20~25%의 확고한 지지층을 갖고 있지만 지지반경이 그 이상으로 좀처럼 넓혀지지 않았다. 당심(黨心)에서는 이명박 후보를 막판에 뒤집었으나 민심(民心)에서는 그 격차를 크게 좁히지 못한 것이다.

    정치인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재는 각종 조사에서 박근혜는 대부분 맨 오른쪽에 자리매김한다. 아버지 시대의 그림자와 노무현 정권에서 4대 악법 저지 투쟁 등을 주도하며 쌓인 이미지 탓이긴 하겠지만 박근혜 정치에서 융통성을 느끼기보다는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다.

    ‘박근혜 정치’는 시대정신을 주도하지 못했다. 갤럽 여론조사에서 “왜 박근혜를 지지하느냐”고 물으면 ‘깨끗해서’ ‘여성이라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서’와 같은 답이 10% 내외로 가장 많았다. 박근혜 하면 생각나는 뚜렷한 이미지가 형성돼 있지 않다는 얘기다. ‘이명박 후보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강조하다 보니 자신의 강점과 장점을 상대적으로 부각시키지 못한 탓도 크겠지만 경제와 안보·사회통합이라는 핵심 이슈에서 국민에게 다가서지 못한 것이다. 다만 ‘콘텐츠 부족’이라는 비판에 시달리던 박근혜가 예상 밖으로 TV토론회를 잘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은 박근혜의 새로운 출발을 위한 자산이다.

    박근혜는 요즘 깨끗한 경선승복으로 그 어느 때보다 상종가다. 측근들은 “선대위원장이든 어떤 자리를 맡든 박 전 대표는 이명박 후보를 진심으로 도와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출렁이는 게 민심이다. 작년 지방선거 전 박근혜가 얼굴에 칼을 맞았을 때도 민심은 치솟았다가 가라앉았다. 경선승복으로 인한 인기도 시간이 지나면 거품처럼 빠질 수 있다.

    한 측근은 “박근혜 정치가 결실을 맺으려면 ‘박근혜의 꿈’이 무엇인지를 국민에게 더욱 명확히 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버릴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를 잘 아는 한 인사는 “가장 중요한 것은 병아리가 부화하듯이 자신의 틀을 깨고 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 정치는 군자의 도덕정치나 철인정치의 바탕을 갖고 있지만 마키아벨리즘적 요소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박근혜 정치’는 권력을 관리하는 데는 적합할지라도 권력을 쟁취하는 형은 아닐지 모른다. 결국 원칙을 원칙이라고 말하지 않는 경지, 쇼와 쇼 아닌 것이 구분되지 않는 경지, 선과 악으로 정치를 가르지 않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 박근혜가 시도하고 있는 실험정치의 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