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야한 ''애로송'' 방송불가 가수 정희라
2004년 12월, 전성기를 이미 넘어선 집단 성매매지역인 '미아리 텍사스' 골목을 헤집고 다닌 기억이 있다. 을씨년스러운 풍경 속에서 건져내고자 한 것은 다름아닌 그들만의 구전가요 '미아리송'을 채집하기 위해서였다. 성기를 지칭하는 속된 말이 난무하는 경쾌한 노래와 성매매 여성의 기구한 사랑을 다룬 애절한 트로트풍의 노래도 있었다. 너무나 노골적인 '에로송'의 존재를 그 때 처음 알았었다.
그 후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우연히 '애로쏭'이라고 적힌 길거리 테이프를 발견했다. 조악한 디자인과 인쇄상태를 보고 결국 구입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노래도 만들고 부르고 있구나'라는 사실이 신기하기만했다. 7월 초, 양평으로 취재를 가던 길에 국도 휴게실에서 다시 '애로쏭'을 발견했다. 가만히 살펴보니 벌써 5, 6집이 나와있었다. 더이상 지체말고 '애로쏭'의 주인공인 정희라씨(46)를 만나봐야겠다고 서둘렀다.
연간 20만장 이상 판매 100만장 이미돌파
서울 동묘역 인근. 70-80년대풍 분위기가 물씬한 비탈진 계단을 올라 3층 사무실에서 정씨를 만났다. 그곳은 한 작곡가의 사무실이자 어머니 노래교실이었다. 또한 노래연습실이자 녹음실이었고 음반사 사무실이기도 했다. 비좁았지만 그야말로 전천후 음악아지트였다. 방음처리가 된 노래연습실로 들어서면 다소 민망한 사진들이 벽에 떡하니 걸려있다. 남자 성기모양을 빼닮은 남근목 앞에서 포즈를 취한 정씨의 사진과 '애로쏭'의 야한 자켓 사진들이다.
'애로쏭'의 역사는 언제 시작된 것일까. 정씨는 2001년 11월 1,2집을 동시에 발매했다고 설명했다. 5년 동안 정희라씨는 그저 '별난 음반'이라고 치부한 사람들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내공을 쌓고 신화를 만들어냈다. 연간 20만장 이상씩 팔아치우고 있는 정씨의 음반 판매기록은 올 3월 '애로쏭 5,6집'이 나오기 전 이미100만장을 훌쩍 넘긴 상태다.
주류가요계의 웬만한 가수도 꿈꾸기 힘든 대기록을 혼자서 조용히 작성한 셈이다. 그것도 길거리 음반 판매대를 무대로 이룬 것이다. '애로쏭'이 히트하면서 5-6집까지 이어졌고 '노골쏭 1-4집'과 '쇼킹 1-2집' 등이 정씨의 대기록을 도운 효자들이다. 고속도로 휴게소나 화물트럭 운전기사들 사이에선 졸음방지용 테이프로 명성이 더 드높다. 이유는 '애로쏭'을 듣는 순간 웃음 때문에 도저히 잠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휴게소 등서 졸음방지용 음악으로 명성 자자
'애로쏭'하면 야한 노래라는 상상은 어렵지 않다. 자켓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다. 40대 중년의 몸이지만 정씨 본인이 직접 스커트를 손으로 걷어올리고 있다. 팬티노출을 불사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야하다기 보다는 어딘가 모르게 촌스러워 보인다. 정작 정씨는 당시 그 느낌은 의도된 것이었다고 해명한다.
"무조건 음반을 내고 가수가 되고 싶었다. 그때 애로쏭과 인연을 맺었는데 딱 내노래라고 생각했다. 야한 노래 하나쯤 있으면 재미을 것 같았다. 더구나 애로쏭하면 내가 최초이고 내가 1인자가 될 수 있다는데 매력을 느꼈다."
그렇다면 '애로'는 '에로'여야 하지 않을까. 정씨는 애로가 한자로 '사랑애, 길로'자를 쓴다고 짚어준다. 어차피 '에로'가 영문식 표기인 'ERO'에서 왔기 때문에 중의적인 표현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꼭 노골적이고 에로틱한 노래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란 의미에서 '애로쏭'으로 부르기도 한다고 덧붙인다.
대표곡 '쏘세지 타령'등 노래보다 제목이 더 야해
노래는 얼마나 야할까. 정씨가 꼽은 '애로쏭' 최대의 히트곡은 '쏘세지 타령'과 '섹스의 7계명' 등. 그 중 '쏘세지 타령'을 살펴보면 성매매 여성들이 흥얼대는 '미아리송'에 비해 그리 야하지도 않다. 오히려 성고전 '고금소총'의 한대목을 연상시키듯 성에 대한 풍자와 해학이 가득하다.
어깨가 들썩이는 타령조를 가만히 듣자하면 '선텐도 안한 것이 거무스름하고/ 버섯도 아닌 것이 갓을 쓰고/ 번데기도 아닌 것이 주름을 잡고/ 젖소도 아닌 것이 우유도 나오고/ 만지다 안만지면 죽었다 살았다/ 요것이 쏘세지 타령이야'란 식이다. 남녀성우의 추임새는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드는데 '12cm는 가정용 15cm는 영업용 18cm는 가정 파괴용'이라고 외친다.
정희라씨의 '애로쏭'은 결국 노래 자체가 야하다기 보다는 제목이 더 직설적이다. 그리고 '애로쏭'을 바라보는 이중적인 사람들의 마음이 더 음란한 셈이다. '애로쏭'의 인기비결 중 하나는 노래만 수록된 음반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엔 우리네 성생활을 꼬집은 짧막한 꽁트들이 삽입돼 있다. 예를 들어 삼행시 형식으로 꾸민 '올빼미'란 꽁트의 한대목은 '올, 올라와 오빠! 빼, 빼지마 오빠! 미, 미치겠다 오빠!'란 식으로 폭소를 쏟아내게 만든다.
방송불가 수모 불구'애로쏭' 안틀면 출연포기 불사
'애로쏭 1,2집' 때는 출연신청을 염두에 두고 핸드폰 번호까지 공개했던 정씨다. 100만장 가수로 20-50대까지 폭넓은 팬층을 거느린 지금은 격세지감의 추억. 아쉬운 것이 있다면 자신이 '방송불가' 가수란 사실뿐이다. 팬들의 성화 역시 '왜 방송에선 노래를 안하냐?'는 안부가 대부분.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상파 아침프로그램에서 연락이 와서 방송출연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제작이 완료된 상태에서 방송불가 방침이 내려졌다. 인터뷰 내용과 노래가 너무 야하다는 이유였다. 유일하게 방송에 나갔던 것이 시사문제를 주로 다뤘던 한 라디오방송. 인터뷰는 그대로 나갔지만 여기서도 노래는 '애로쏭'이 아닌 곡이 방송되고 말았다. 그 후 정씨는 방송출연을 포기했다. '애로쏭'을 내보내지 않는 한 더이상 방송에 나가고 싶지도 않단다.
40대 중반을 넘긴 나이답지 않게 정희라씨의 몸매는 처녀 부럽지 않을 정도로 늘씬 그 자체. 그래서일까. '정말 가사대로 성생활은 잘 하면서 사느냐?'고 음탕한 농을 던지는 사람들도 많다. 정씨는 이에대해 자신은 성에 대해 개방적이고 관심이 많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게다가 지금도 지극히 정상적인 부부들처럼 성생활을 활기차게 즐기며 산다고 한다. '애로쏭'의 신화는 정씨의 용기에 의해 시작됐다. 하지만 그 신화는 음담패설을 통해 스트레스 해소를 경험한 소비자들에 의해 더 화려하게 계속되고 있다.
'애로쏭' 스타 정희라씨 녹음실 풍경
대표적인 '애로쏭'을 몇곡만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정희라씨는 작은 녹음실로 들어가 겉옷을 벗고 등이 훤히 드러나는
검은색 상의 차림으로 관객없는 무대임에도 최선을 다했다.
녹음실 한쪽 벽에는 100만장 판매신화를 자랑하듯
자랑스럽게 '애로쏭' 홍보를 위해 만든 포스터가 붙어있다.
다소 도발적으로 보이는 1, 2집 홍보 포스터는 마치
초미니 스커트 시대를 예감한 것처럼 보인다.
'애로쏭'이 히트하자 탄력을 받아
'노골쏭'까지 히트대열에 오른다. 이 포스터를 잘 살펴보면
살짝 팬티노출이 시도돼 있다.
'애로쏭 3,4'집은 흥행 성공에 대한 자부심 때문일까.
전례 없이 과감한 포즈와 노출이 시도돼 있다.
아마도 '애로쏭'의 히트는 정씨가 어루만진
이 남근목들 덕분인지도 모른다.
녹음실에 걸려있는 이 사진 몇장만으로도 정희라씨는
한국 유일의 애로가수로 손꼽힐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