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 다시 찾은 65번째 ‘촛불’ 시민들
청계광장 다시 찾은 65번째 ‘촛불’ 시민들 | |
[현장] 2천여명 모여…민주노총 “지친 촛불에 힘을 주자” “12일에는 서울 광장서 촛불 밝히자”…경찰과 충돌 우려 |
11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
11일 촛불 시민들은 다시 ‘청계광장’을 찾았다. 청계광장은 5월 2일 시민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처음으로 촛불을 든 장소다. 오늘로 65번째 촛불이 켜졌다.
오랫동안 촛불을 밝혀왔던 서울 시청앞 광장을 경찰에 내줬지만, 다시 청계광장을 찾은 시민들의 표정에는 실망감보다는 반가움이 더 커 보였다. 두 달 남짓 이어진 촛불행렬로, 촛불의 수는 줄었지만 시민들의 표정에선 남다른 감회도 묻어났다. 시민들은 ‘무능독재 이명박 민생경제 다 죽인다’, ‘미친 소 미친 교육 그만두시오’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가족과 함께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전기만(44·서울시 성수동)씨는 “청계광장은 청소년들이 처음 촛불을 들었던 장소여서 의미가 깊다”며 “앞으로도 우리 가족은 촛불의 밑거름이 되기 위해 계속 나올 것”이라 말했다.
민주노총과 문화단체 주최로 열린 이날 촛불문화제는 조합원과 시민 등 2천여명(경찰 추산 8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청계광장에서 열렸지만,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이들은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와 촛불집회 탄압을 강하게 규탄했다. 사회자는 “민주노총이 꺼져가는 촛불에 힘을 주고자 촛불문화제를 열게 됐다”며 “지친 촛불들에게 힘을 주자”고 말했다.
촛불문화제는 자유발언대 형태로 진행됐다. 신정아(18)양이 “청소년이 촛불을 먼저 들었다. 우리가 빠지면 안된다. 시험이 끝난 청소년들 이제 다시 모이자”고 제안하자, 교복을 입고 참가한 학생들과 시민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언론은 사실만을 다루고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회사나 자기 이익을 위해 글을 써서는 안된다. 조중동을 언론이라 하지 말자”며 “피디수첩과 공영방송, 정도를 걷는 모든 언론들에게 격려와 힘을 실어달라”고 호소했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 박원석 상황실장은 어제에 이어 이날도 문화제 중간 전화 연결을 통해 시민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박 실장은 “‘공안탄압에도 촛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손팻말을 보니 힘이 난다”며 “조계사에서도 수배자들이 촛불을 함께 밝히고 있으니 시민 여러분도 끝까지 함께 해달라”고 당부했다.
11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강같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
8시30분 문화예술인공동행동이 주최하는 촛불문화제가 시작됐다. 촛불문화제는 마치 축제 한마당 같았다. 누리꾼 단체인 ‘10대연합’ 청소년 8명은 촛불집회에서 가장 많이 불리고 있는 <헌법 제1조> 노래에 맞춰 율동을 선보였다.
가수 손병휘, 몸짓패 선언 등이 나와 시민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송경동 시인은 ‘2008년 나는 거기에 있었다’는 제목의 시를 낭송했다. 시민들은 “이명박은 물러나라, 여름휴가는 촛불로” 등의 구호를 외치거나, 노래에 맞춰 율동을 선보이며 분위기를 한껏 즐겼다.
촛불문화제는 9시40분께 끝났다. 최영준 대책회의 조직팀장이 “오늘은 여기서 끝내고, 12일 많은 시민들이 모여 꼭 시청 광장을 되찾자”고 제안했고, 시민들 대부분은 해산에 동의했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경찰이 사방을 에워싸 시청까지 가지 못해 아쉽지만 오늘 촛불의 새로운 불씨를 밝힌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 6시부터 서울 광장 인근을 봉쇄하고, 67개 중대 5천여명의 병력을 서울 광장과 청계광장 등에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9시를 넘어서자 경찰이 3차례에 걸쳐 시민들에게 자신해산을 경고하는 방송을 내보내 한때 긴장감이 감돌았으나 양쪽의 충돌은 없었다.
다만, 몇몇 시민이 시청앞 광장을 찾아 원천봉쇄하고 있는 경찰들과 말싸움을 벌였다. 다음 아고라 회원 100여명은 밤 늦게까지 서울 중구 YTN 본사 앞에서 ‘구본홍 사장 내정’에 항의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에 앞서 민주노총 조합원 1천여명은 오후 4시30분부터 서울역 광장에서 ‘공안탄압 분쇄, 미친소 수입 이명박 정부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이석행 위원장은 “우리는 대한민국의 종업원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자기 주인을 종업원 다루듯 하는 대통령에 분통이 터진다”며 “공권력에 짓밟힌 민주시민에게 민주노총이 힘을 주자”고 제안했다.
이들은 ‘공안탄압 분쇄’ 얼음 부수기 퍼포먼스를 벌인 뒤 오후 5시30분 서울역을 출발해 청계광장까지 거리행진을 벌였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12일 오후 7시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대규모 촛불문화제를 열 계획이다. 경찰이 서울 광장을 원천봉쇄할 방침이어서 양쪽의 충돌이 우려된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