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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승부수종합게시판 2006. 11. 29. 04:32
“언제든 정치판 흔들 수 있다” 또 승부수
28일 오후 청와대에서 제1차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들에게 위촉장을 주기 위해 행사장으로 들어가며 위원들에게 목례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뒷모습. 이날 오전 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임기를 다 마치지 못하는 첫 대통령이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석동률 기자임기를 다 마치지 않는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28일 발언이 정치권에 메가톤급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그것도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나왔다. 작심하고 중대 결단을 예고한 것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무엇보다 최근 노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긴박했다. 26일 ‘전효숙 사태’와 사립학교법 등 국회 계류 법안의 일괄 타결을 위해 여야정(與野政) 정치협상회의를 제안했지만 한나라당은 즉각 거부했다. 27일엔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청와대 만찬 회동을 제안했지만 이 또한 거절당했다.
그 직후 노 대통령은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지명 철회를 발표했고 이어서 ‘임기 포기 시사’ 발언을 했다. 야당이 헌법을 위반한 불법 행위로 부당하게 헌재소장 임명동의안 처리를 막았고 대통령이 이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대통령의 권한이 불법적으로 침해받는 상황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겠느냐는 ‘울분’의 토로이자 그런 대통령을 하느니 차라리 중간에 그만두고 말겠다는 의사 표시라는 해석이 나온다. 우리나라 헌정사에 임기를 채우지 못한 대통령이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 대통령 등 4명이나 되는데도 노 대통령이 ‘임기를 다 안 마친 첫 대통령’이라고 언급한 대목도 주목된다. 과거 군사쿠데타 등 타의에 의해 도중하차한 대통령들과는 달리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자진 사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당장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노 대통령이 정치적 고비 때마다 했던 ‘임기 발언’과 별다르지 않을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임기 중도 포기를 시사한 노 대통령의 첫 언급은 취임 4개월째인 2003년 5월에 나왔다. 사회적 논란이 일거에 터져 나오자 “전부 힘으로 하려고 하니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같은 해 12월 불법 대선자금 수사 때는 “불법 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
지난해 4·30 재·보궐선거로 여대야소 구도가 붕괴되자 노 대통령은 3개월 뒤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권력을 통째로 내놓으라면 검토하겠다”고 했고 한나라당이 꿈쩍도 하지 않자 8월 30일 열린우리당 의원들과의 청와대 만찬에선 “2선 후퇴나 임기 단축을 통해 노무현 시대를 마감할 수 있다는 결단도 생각해 봤다”며 발언의 강도를 높였다.
노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에도 사퇴서를 던진 일이 있다. 1989년 “대중 투쟁하겠다”며 의원직을 사퇴했다가 17일 만에 철회했고 1990년에는 국군조직법 날치기 통과에 반발해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으나 처리되지 않아 의원직을 유지했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도 이날 노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최근 상황에 대한 대통령의 심경과 각오를 얘기한 것일 뿐”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현재로서는 정치권에 “국정 운영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정치판 자체가 큰 틀에서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이와 관련해 김재휘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의지를 관철하겠다는 강한 임전(臨戰)의 자세가 엿보인다. 지금까지 스타일로 보면 물러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될 때 명분을 찾지 않았느냐”고 해석했다.
물론 속단하기는 어렵다. 노 대통령은 대선일 전날인 2002년 12월 18일 지지를 철회한 ‘국민통합21’ 정몽준 의원의 집을 찾아가 설득하자는 측근들의 요청에 “내가 정치를 하는 이유는 안 해도 되기 때문이며 대통령선거에 나온 이유는 안 돼도 되기 때문”이라며 버티다 마지못해 간 일이 있다. ‘툭하면’ 임기 포기 발언을 하는 것 자체가 여느 정치인과는 다른, 노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성을 증명하는 사례라는 얘기도 나온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노 대통령 국무회의 발언 전문
한마디 할까요. 국회에서 표결을 거부하고, 또 표결을 방해하는 것은 명백히 헌법을 위반하는 불법 행위입니다. 부당한 횡포죠. 그런데 어제 대통령이 헌재 소장 임명동의안을 철회했습니다. 굴복한 것이죠. 뭐, 현실적으로 굴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돼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이 굴복했습니다.
대통령의 인사권이 사사건건 시비가 걸리고 있어서 대통령의 권한 행사가 대단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어렵더라도 해야겠지요. 지금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자산은 당적과 대통령직 두 가지뿐인데 만약에 내가 당적을 포기해야 되는 상황까지 몰리게 되면 그건 임기 중에 당적을 포기하는 네 번째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아주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마는, 그러나 그 길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임기 동안에 직무를 원활히 수행하자면 이런저런 타협과 굴복이 필요하면 해야 될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임기를 다 마치지 않은 첫 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여러분도 상황에 너무 동요하지 말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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