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인들은 이구동성으로 “김경문 감독의 고집은 정말 고래 심줄보다 세다”고 말한다.
그 뚝심이 대표팀을 베이징올림픽 야구 금메달로 이끌고 김 감독을 ’국민감독’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를 맡은 지난 4년간 한국시리즈에 두 차례 올랐지만 준우승만 차지했던 김 감독이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에 빛나는 명장 김응용 감독(현 삼성 사장)도 올림픽에서 못한 일을 해냈다.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올림픽에서 따낸 금메달이라 더욱 희소성이 큰 덕분인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으로 이끈 김인식 한화 감독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게 됐다.
웬만하면 고개를 숙이고 주위 의견을 수렴할만도 하지만 김 감독은 자신의 신념을 무척 중요하게 여겼다. 대표 선발과정에서 그 고집은 그대로 드러났다.
지난해 12월 베이징올림픽 아시아예선 때 선수를 선발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회는 장타를 때릴만한 외야수가 부족하다는 판단에서 심정수(33), 양준혁(39.이상 삼성) 등을 데려가는 게 어떻냐는 의견을 개진했다.
그러나 ’두산표 발야구’를 구상 중이던 김 감독은 단칼에 ’NO’를 선언했다. 비록 자신이 선택한 선수들이 국제경험이 없고 ’똑딱이’ 타자일지 모르나 자신만의 스타일을 펼치기 위해서는 발 빠른 외야수가 더 낫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일본에 이어 2위를 한 김 감독은 3월 올림픽 최종예선을 통과한 뒤 베이징올림픽 본선 멤버 선발과정에서도 “예선에서 고생한 선수들을 우선적으로 데려가겠다”고 말했고 그 기조를 지켰다.
단 한 명, KIA 투수 윤석민(22)을 놓고 여론이 들끓자 KBO 수뇌부가 김 감독을 설득해 그를 대표팀에 합류시키게 됐다.
결과적으로 윤석민이 없었다면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은 꿈도 꿀 수 없었지만 무슨 연유에선지 김 감독의 생각은 막판까지 요지부동이었다.
국제경기에서 처음으로 대표팀을 지휘한 김 감독은 아시아예선에서 적응을 거쳐 지난 3월 세계 최종예선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본격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류현진(21.한화)과 김광현(20.SK) 두 좌투수를 향후 10년간 대표팀을 이끌 재목으로 낙점하고 ’원투펀치’로 쓰기 시작했다. 손민한(33.롯데)과 김선우(31.두산) 등 베테랑까지 길게 던질 수 있는 4명을 선발투수로 기용했고 불펜으로 이어지는 특유의 선 굵은 마운드 운용을 선보였다.
공격에서는 ’쌕쌕이’ 1-2번 타자와 이승엽(32.요미우리), 이대호(26.롯데)의 한방으로 점수를 뽑는 정공법을 펼쳤다.
그러나 올림픽 본선에서는 모든 이의 예상을 깨는 변칙 작전을 오직 뚝심으로 밀어 붙였다.
13일 미국 과 1차전에서 6-7로 뒤진 9회말 무사 2루에서 동점을 위한 보내기 번트 대신 강공을 지시한 것, 22일 일본과 준결승전에서도 2-2로 맞선 8회 무사 1루에서 역시 강공을 택한 것 등 1점이 큰 국제대회에서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힘든 작전을 지시했다.
하지만 묘하게 모두 성공했다.
미국의 실책이 나왔고 일본전에서는 고대하던 이승엽의 홈런이 나왔다.
번트 대신 강공을 선호하는 그의 공격 성향은 대타 작전까지 신들린 듯 맞아 들어가면서 팀 승리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미국전에서 6-7로 뒤진 9회 말 선두타자로 나온 대타 정근우의 좌선상 2루타, 일본과 준결승전에 1-2로 뒤진 7회 2사 1,2루에서 나온 대타 이진영의 천금 같은 동점 적시타 등 ’작두 탄 도령’처럼 김 감독 이 펼치는 대타작전은 족족 성공했다.
자신의 야구를 펼칠 선수들로 대표팀 세대교체를 단행한 김 감독은 영감에서 우러난 뚝심으로 금메달을 일궈내며 베이징에서 감독 인생의 가장 화려한 장을 열어젖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