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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욕설도 음란표현도 없는데 왜 금칙어야”
    종합게시판 2008. 8. 7. 14:51

    ㆍ포털 게시물 등록 거부 급증 '누리꾼들 화났다'

    요즘 인터넷 포털의 토론방에선 때아닌 '홍길동 놀이'가 한창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답답증을 호소하는 네티즌이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포털의 금칙어 탓에 A를 A가 아닌 B로 써야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얘기다. 이들은 온라인에서의 정부 비판 여론이 거세지는 시점에 금칙어도 덩달아 대폭 확대됐다며 '음모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금칙어 설정은 유해정보 차단과 명예훼손 방지, 저작권 보호 등을 위해 이전부터 운영되던 제도다. '자살' '일진회' 등 특정 사회문제가 있을 때 정부가 포털에 협조를 요청해 해당 단어를 금칙어로 지정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금칙어는 기본적으로 사전 검열이다. 게시물을 미리 검사하고, 금칙어가 포함돼 있을 경우 등록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누리꾼도 불쾌한 욕설을 금칙어로 분류하는 것에 대해선 크게 이견이 없다. 이들이 특히 분노하는 것은 정부 정책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한 비판이 가로막힐 때다. 전문가들은 금칙어 1~2개가 있다 해서 악성 게시물로 치부, 등록을 일괄 금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금칙어 제도가 여론 통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글 좀 쓰자"

    금칙어는 특정 인터넷 사이트 내에서 사용이 금지된 단어나 표현을 말한다. 욕설이나 성인 관련 단어들이 대부분이다. 이용자는 금칙어가 들어간 글을 웹으로 전송할 수 없다. 검색 창에 단어를 입력해도 검색 결과가 제공되지 않는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사이트에선 성인인증 절차를 거쳐야 검색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파일공유 사이트는 금칙어 제도가 일반화돼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저작권자의 요청에 따라 드라마·영화 등 영상물의 제목과 음악 파일의 이름이 금칙어로 처리된다. 이 때문에 영화 제목을 있는 그대로 입력해서는 해당 파일을 등록할 수도, 내려 받을 수도 없다. 그래도 이용자들은 이 같은 '불편'에 큰 불만이 없다. 이들은 금칙어를 비켜가는 편법을 다양하게 발전시키며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화 '스파이더맨' 파일을 찾고 싶을 때는 음절 사이마다 마침표를 찍어 '스.파.이.더.맨'이라고 쓴다.

    포털에서도 누리꾼들은 나름의 생존 비법을 터득해왔다. 금칙어 대신에, 금칙어와 음절 1~2개가 비슷한 말을 빌려 쓰는 것이다. '십장생' '십자수'가 본래의 뜻과 달리 욕설로 쓰인다는 것은 금세 눈치챌 수 있다. '개나리' '민들레' 등 멀쩡한 단어도 글의 맥락에 따라 욕이 된다. 이처럼 '대체재'가 존재하는 덕분인지, "욕을 못해 답답하다"며 가슴을 치는 네티즌이 있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컴퓨터 앞에서 분통을 터뜨리는 이용자들이 부쩍 늘었다. 글을 제법 반듯하게 쓴 것 같은데도 '금칙어가 포함돼 있어 게시물을 등록할 수 없다'는 안내문이 뜬다는 것이다.

    "우아한 것도 죄예요? 우아하고 싶어서 카페 이름을 '우아한 여자들'이라고 했는데 왜 금칙어냐고요, 쩝.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무슨 홍길동전도 아니고…." (아이디 hellomimi) "뭔 금칙어가 그리 많은지 글쓰는데 안 올라가서 한참 씨름 했습니다."(아이디 독도는우리땅)

    문서작성 프로그램이 맞춤법을 검사하듯, 해당 표현 밑에 빨간 줄이라도 그어주면 고마우련만. 정확히 어느 대목이 금칙어 규정에 걸리는 것인지 알 수 없어, 이 단어 지워보고 저 표현 바꿔보는 수고를 반복해야 한다. 물론 이 와중에도 네티즌들은 '살 길'을 알아서 찾아가고 있다. "금칙어 때문에 난감할 때는 사진 파일로 만들어서 올리면 문제 없음."(아이디 k9172136)

    하지만 이것이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욕설도 없고 음란한 표현도 없는데 대체 어디가 문제라는 말인가. 이용자들은 '보이지 않는 손'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금칙어 지정에 개입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정황증거'도 그럴 듯하다. 지금 온라인에선 몇 달 째 정부를 비판하는 여론이 거세다. 이 상황에 대응하고자 청와대는 인터넷을 담당하는 국민소통 비서관을 신설하고 김철균 전 '다음' 부사장을 임명했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포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인터넷 정보보호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런 시국에 일부 포털은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매는' 자충수를 둬 이용자들의 의혹을 부채질했다. '네이버'는 촛불시위를 중계했던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의 주소를 금칙어로 설정했다고 뒤늦게 고백했다. '다음'의 토론방 '아고라'에선 '쥐새끼'가 한때 금칙어로 지정돼 누리꾼들이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다.

    누가 금칙어를 정하나

    실제 노무현 정부에선 '정보통신윤리위원회'(정통윤)가 '성인인증 키워드' 718개를 포털에 권고했던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2004년 10월 정통윤에 정보공개청구를 한 데 따른 것이다. 정통윤이 작성한 키워드는 성 관련 단어와 욕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중엔 '여고생' '셀카' 등 지극히 건전하게 해석될 만한 표현도 섞여있었다. (정통윤의 기준대로라면 '촛불 여고생'이나 '셀카 예쁘게 찍는 법'은 성인인증을 받아야 하는 검색어가 된다.)

    정통윤의 후신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는 지난 2월 출범한 이래 아직까지 포털과 금칙어에 대해 협의한 적이 없다고 했다. 방통심의위 관계자는 "포털에 금칙어와 관련해서 협조를 요청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현재 금칙어는 누가, 어떤 기준에 따라 정하고 있는 것일까. 정통윤의 금칙어 권고안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엠파스'는 "(구)정통윤 권고에 근거해 청소년 유해·불법 게시물 노출 우려가 있는 검색어를 금칙어로 지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네이버'는 '개인정보 보안' '사회 이슈' '사회질서 위반' '기타' 등 4가지 범주로 나눠 금칙어를 설정하고 있다. 개인 정보를 침해하는 검색어나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표현, 마약·살인 등 범죄 관련 단어, 음란성 표현과 욕설 등은 금칙어가 된다. '개독교'는 기독교인에게 명예훼손이 될 수 있어 금칙어 리스트에 올랐다.

    '다음'은 전문가들이 게시물을 체크하며 금지해야 할 표현을 골라낸다. 이용자의 신고가 들어온 뉴스 댓글을 분석해 자주 등장하는 악성 단어를 금칙어로 정하기도 한다. '원조교제' '무료야동' '실전머니게임' 등의 용어가 '다음'의 금칙어 목록에 있다. '다음' 관계자는 "금칙어로 정해진 단어의 새로운 패턴이 등장하면 이 패턴을 분석, 금칙어로 다시 설정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기준은 업체마다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은 금칙어 목록이 대외비라는 것이다. 그 내용이 알려질 경우 이용자들이 이를 교묘하게 변형해 사용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금칙어가 포털 내의 모든 서비스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단어가 검색 창에선 허용되고 뉴스 댓글에선 금지될 수 있다. 금칙어로 정해졌다해서 그 표현을 영원히 쓸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뉴스 인물에 대한 비방이 과도하다고 판단될 때 한시적으로 관련 단어를 막아놓았다가 대중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금칙어에서 제외한다.

    이 같은 추세는 2007년 서울중앙지법이 포털 뉴스에 달린 댓글로 특정인의 명예가 훼손됐다면 포털 사업자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한 이후 강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법원은 판결문에서 "명예훼손적인 자료들이 검색될 위험이 큰 상황을 인식했다면 이른바 금칙어 설정 등으로 그러한 자료들이 현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야자타임'은 끝났다?

    분별 없는 댓글로 타인에게 피해를 입혀선 안 된다는 대의에 반대할 누리꾼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금칙어 지정 기준이 자의적이라는 데 있다. 어제는 허용됐던 말이 왜 오늘은 금칙어인 것인지, 포털이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오늘 충격적인 사실을 확인했네요. 네이버의 '빨갱이' 금칙어가 풀렸습니다. 수구꼴통도 금칙어가 아닌데 빨갱이가 금칙어인 건 공정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왜 하필 지금 금칙어를 푼 건지 의문입니다."(아이디 울림)

    금칙어 때문에 게시물 등록이 거부되는 일이 최근 몇달 사이 대폭 늘어나면서 누리꾼들은 "포털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거나 "금칙어는 사전 검열과 다를 바 없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곽동수 한국싸이버대 교수는 "네티즌들은 '야자타임'(나이와 상관없이 서로 말을 놓기로 정해놓은 시간)이 끝난 듯한 기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네티즌은 '디시인사이드' 같은 사이트에서 욕하고 장난하고 신조어도 만들면서 즐겁게 놀았다. 곽 교수는 "이런 문화가 포털의 토론장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며 "그에 대한 관용이 아직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금칙어 제도 자체가 이용자의 권리보다 포털 사업자의 편리를 우선시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법적으로 문제가 될 글을 찾기 위해 수많은 게시물을 일일이 확인할 수 없으니, 일단 못 쓰게 하고 보자는 편의주의라는 것이다.

    포털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엠파스' 관계자는 "이용자들이 포털에서 검색을 하다보면 금칙어는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부분"이라며 "그래서 정치적인 표현에 대해 개입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명예훼손성 글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사용자의 동의를 얻어서 빼라'고 하는데 검찰과 방통위는 '무조건 삭제하라'고 한다"면서 "우리로서도 운영하기 어려운, 서로 배치되는 상황이 많다"고 털어놨다.

    금칙어 제도 자체가 무용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어린이를 음란물로부터 보호하고 게시물에서 욕설을 퇴출시키는 데 효과가 있다. 문제는 곽 교수의 지적대로 "정부가 통제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날의 칼'이다.

    2004년 7월 서울시 홈페이지에선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서울시가 '명바기' '명배기' '명박이' '명백이' 등을 금칙어로 설정해놓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던 때다. 서울시 관계자가 "외부 관리업체가 욕설, 저속한 표현과 함께 시장 이름을 희화화하는 단어를 금지어로 설정해놓은 것 같다. 지금은 모두 게재할 수 있게 돼 있다"고 해명하면서 이 사건은 잊혔다.

    그러나 비판 세력을 억누르고 여론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권력의 속성은 불변의 것이다. 권력자 한 사람을 위한 금칙어들이 다시 출현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금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 글 최희진·사진 정지윤기자 daisy@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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