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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물의 은메달 ..왕기춘
    2008 베이징 올림픽 2008. 8. 12. 07:38





    특별취재단 = ‘이원희 선배 대신 금메달을 따고 싶었지만...’

    ‘겁없는 신예’ 왕기춘(20.용인대)이 11일 베이징 과학기술대학 체육관에서 열린 유도 남자 73㎏급 결승에서 금빛 도전에 실패한 뒤 우승 좌절의 아쉬움을 눈물로 대신했다.

    왕기춘은 한국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선사했던 최민호에 이어 두 번째 유도 챔피언 탄생을 기대했지만 결승 상대인 엘누르 맘마들리(아제르바이잔)에게 경기 시작 13초 만에 발목잡아메치기 한판으로 매트 위에 쓰러졌기 때문이다.

    왕기춘은 충격적인 패배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모습이었고 침통한 표정으로 경기장에서 내려왔다.

    굵은 눈물을 흘리며 인터뷰를 거부했던 왕기춘은 안병근 감독의 권유로 취재진의 질문에 “도와 주신 많은 분들께 죄송하고 가족에게 미안하다. 열심히 했지만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짧게 전했다.

    8강 경기 중 옆구리를 다쳐 심한 통증을 호소했던 왕기춘은 4강전에서 라슐 보키에프(타지키스탄)를 상대로 우세승을 거뒀지만 결승에서 만난 맘마들리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해 결국 고개를 숙였다.

    특히 이 체급에서 올림픽 2연패를 노리던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28.한국마사회)가 KBS 보조 해설위원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놓친 금메달이라 더욱 아픔이 컸다.

    지독한 ‘연습벌레’로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당당히 우승하며 세계 최강자 실력을 보여준 왕기춘은 “원희 형 몫까지 대신해 꼭 금메달을 따겠다”던 다짐이 무위로 돌아가 아쉬움을 안고 귀국 길에 오르게 됐다.


    2008 베이징올림픽 유도 남자 73㎏급에서 은메달을 따낸 왕기춘(20.용인대)은 불과 2년 전만 해도 까까머리 고등학생이었다.

    서울체고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던 왕기춘은 대학교 신입생이던 지난 해 3월에 당시 73㎏급을 양분하고 있던 이원희(27)와 김재범(23.이상 한국마사회)을 연파하는 등 말 그대로 ’될 성 부른 나무’였다.

    1988년 9월13일 생으로 아직 만 20세도 되지 않은 왕기춘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여자 72㎏급에서 김미정 현 용인대 교수가 금메달을 따낼 때 21살보다 1년 이상 어리다.

    베이징올림픽 출전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쳤던 이원희와 비교해도 세계선수권 제패를 3년이나 일찍 해냈다.

    따라서 은메달에 그쳤지만 자기 관리만 충실히 할 경우 한국 유도의 간판으로 충분히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유도계의 기대다.

    올림픽에서 3회 연속 우승을 해낸 선수가 2004년 아테네 대회 남자 60㎏급 노무라 다다히로(일본)가 유일한데 왕기춘은 출발은 비록 은메달로 했지만 2012년 런던은 물론 2016년 올림픽에도 28세 팔팔한 나이로 출전할 수 있다.

    1회전 상대였던 리나트 이브라히모프(카자흐스탄)와 경기에서 상대 배대뒤치기에 넘어갈 뻔 하다가 그대로 누르기로 밀어붙여 포인트를 따낸 것에서 보듯 탁월한 유연성이 왕기춘의 최대 장점이다.

    몸이 유연하다 보니 상대 기술에 걸려도 빠져나가는 기술이 탁월하다. 5월 올림픽 대표선발전 승자 결승 이원희와 경기에서도 상대 기술에 크게 넘어가는 도중에 몸을 돌려 앞으로 떨어지며 실점을 면한 것도 좋은 예다.

    다만 3회전에서 레안드로 길레이로(브라질) 전에서 나온 것처럼 확실한 한판 기술이 부족해 종종 연장전까지 끌려들어 가는 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왕기춘은 “금메달을 딸 정도로 훈련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은메달밖에 되지 않았다. 빨리 다음 대회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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