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메이카 볼트, 막판 팔 내린채 뛰고도 9초69 세계新
16일 오전 11시(현지시각). 늦잠에서 깬 우사인 볼트(Bolt·22·자메이카)는 자기 방에서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다. 점심을 치킨 너깃 몇 조각으로 때운 볼트는 낮잠을 청했고, 다시 너깃 몇 조각으로 배를 채운 뒤 트랙에 나섰다. 그러곤 단 9초69 만에 100m 결승선을 돌파해 베이징올림픽을 지켜보던 지구촌 육상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볼트는 이날 오후 베이징 국가체육장에서 열린 올림픽 남자 100m에서 별명 '선더볼트(Thunderbolt· 번개)' 그대로 자기의 기존 세계신기록(9초72)을 0.03초 경신하며 우승했다. 자메이카의 육상 100m 첫 우승. 마의 9초70대 벽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라이벌로 꼽히던 아사파 파월(9초95)은 5위로 밀렸고 리처드 톰슨(트리니다드 토바고·9초86)과 딕스 월터(미국·9초91)가 2~3위에 올랐다. 허벅지 부상에 시달리던 타이슨 게이(미국)는 준결승에서 일찌감치 탈락했다.
◆1초에 10m32 달렸다
9초69로 100m를 달렸다면 산술적으로 초당 10m32를 달린 셈이 된다. 물론 중반에는 가속이 붙기 때문에 훨씬 멀리 달리게 된다. 평균 시속으로 환산하면 37.152㎞가 된다. 독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는 인터넷 판에서 볼트가 100m를 41걸음 만에 달렸다고 전했다. 한 걸음마다 평균 2.439m를 달린 셈이다. 이는 다른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44~47걸음보다 훨씬 적은 것. 그만큼 한걸음에 달리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 16일‘냐오차오’에서 열린 육상 남자 100m 결선에서 우사인 볼트(오른쪽)가 1위로 골인하고 있다. 볼트는 결승선을 20여m 남긴 상황에서 가슴을 두드리는 세러모니를 펼치고도 9초69의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단거리 체형'의 통념을 바꾸다
육상선수는 발이 땅에 닿는 순간(터치다운·touchdown)의 힘으로 추진력을 얻는다. 볼트(1m96, 86㎏)처럼 다리가 길고 호리호리한 선수는 발을 옮기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근력도 약하기 때문에 추진력이 줄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그동안 육상 단거리에서 장신 선수를 보기 어려웠던 이유다. 그러나 볼트는 장신인 데다가 강한 다리근육으로 다리를 빠르게 옮겼으며 추진력도 강력해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최고 스피드가 아니었다
볼트의 스타트 총성 반응시간은 0.165초로 결승에 진출한 8명 중 7번째였다. 스타트가 가장 빨랐던 은메달 톰슨 및 동메달 월터(반응시간 0.133초)보다 0.032나 늦었다. 그럼에도 볼트는 60m를 지나면서 2위 그룹을 완전히 따돌리고 단독질주에 돌입했다. 더구나 볼트는 마지막 순간에 최고의 스피드도 내지 않았다. 레이스 중 양쪽을 번갈아 쳐다보던 그는 10여m를 남기고 두 팔을 벌렸고 자기 가슴을 치며 속도를 늦춘 상태로 결승라인을 통과했다. 왜 그랬을까? 그는 "이곳에 세계신기록을 세우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내가 바로 세계신기록 보유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곳에 우승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올림픽에서 중요한 것은 기록보다 순위라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세계신기록은 깨졌다.
◆인간은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나
만약 볼트의 스타트가 은·동메달 선수만큼만 빨랐더라도 0.03초를 추가로 줄여 9초66이 될 수도 있었다. 스포츠 과학적으론 완벽한 신체조건의 인간이 완벽한 경기장에서 적절한 뒷바람(기록공인 한계풍속 초속 2.0m)의 도움을 받을 경우 최고 9초50까지 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현재로서는 볼트가 이 한계에 가장 가까운 인물일 수도 있다. 볼트는 "나도 나의 스피드가 얼마인지 모른다. 어쩌면 9초60이 될 수도 있을까.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했다.